전망 좋은 방-보는 것과 듣는 것, 두 가지 타이태닉 이야기
보는 것과 듣는 것
“나 혼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재판장님.”과 “틀림없이 알고 있을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라는 진술 가운데 어떤 것이 법정에서 더 강력할까? 왜 법정 밖에서 우리는 간접 지식에 더 큰 신뢰성을 갖는 것일까? 우리가 아는 모든 것, 혹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낯선 사람 아니면 우리 자신)의 관찰의 결과이다. 왜 우리는 낯선 사람의 관찰을 우리 스스로의 것보다 더 신뢰해야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교과서에 인쇄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통째로 인정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것일까(20년 전의 과학이나 기술 교과서를 찾아보라. 그것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당신은 이제는 틀린 것으로 판명된 많은 것들이 인쇄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간접 지식에 그렇게 많은 신뢰를 갖고 있을까? 다른 이들에게서 배운 것을 적용하다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손을 들고 약간의 적의를 비치며 나에게 질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매료되곤 했었다. “나는 대학에서 사람들은 들은 것보다 본 것을 더 기억하고, 보고들은 것을 가장 잘 기억한다고 배웠습니다. 당신의 이러한 이론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이 질문은 모든 이가 이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언제나 나의 마음 속에서 한숨을 자아낸다)
두 개의 포커스 그룹을 테스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첫 번째 그룹에는 10개의 단어를 2초 간격으로 들려주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똑같은 10개 단어가 인쇄되어 있는 스크린을 보여 주었다. 스크린은 20초 동안 볼 수 있게 남겨 두었다. 결과는 두 번째 그룹의 훨씬 높은 단어 기억력을 보여준다. 이 테스트가 아이콘 기억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본 것을 들은 것보다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정말로 증명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단순한 진리는 인간의 두뇌가 마음 속에서 이야기된 언어로 번역되기 전까지는 씌어진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뇌의 청각 관련 영역이 언어를 듣기 전까지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을 때 당신의 눈이 몇 분 동안 같은 부분을 맴돌고 있지만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전혀 알아먹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단지 눈으로 보고만 있을 뿐 마음 속으로 듣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단지 반복이 기억 유지를 증대시킨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단어를 들은 그룹은 단지 한 번씩만 들었다. 주어진 20초에 10개 단어를 본 두 번째 그룹은 평균 5번씩 단어를 들은 셈이다.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할 차례다. “만약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귀가 눈보다 우월하다면 속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아, 이런 질문이 괴롭다는 것은 명백하다. 속독은 듣는 속도, 아니 잠재소리의 속도가 말하는 속도를 훨씬 능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속도, 아니 정확하게 소리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질문이 더 있는가?
두 가지 타이태닉 이야기
제임스 카메론과 모건 로버트슨은 서로 만나지 못했지만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 중 카메론의 버전은 주류 영화가 되었고 로버트슨의 이야기는 물 속에서 죽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카메론의 이야기는 무엇이고, 왜 우리는 그것과 동일한 로버트슨의 이야기를 거부했는가? 두 이야기는 부자들과 매혹적인 여행자들로 가득찬 ‘가라앉을 수 없는’ 호화 유람선이 빙산에 충돌하여 북대서양 바닥에 가라앉은 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 대재앙은 4월에 일어났으며 구명보트의 부족이라는 소름끼치는 비극이 존재했다. 이러한 요소들에서 두 이야기는 동일하다.
로버트슨 버전의 문제는 세밀한 것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일까? 로버트슨은 배의 길이가 800피트고 배수량은 7만 톤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는 882피트와 6만 6천 톤이다. 이러한 실수는 배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로버트슨은 배의 이름을 타이탄이라고 불렀다. 카메론은 타이태닉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가 카메론의 타이태닉 이야기와 사랑에 빠지게 한 디테일이 아니다. 로버트슨은 아마 카메론처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당신은 항변할 것이다.
내가 당신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디테일한 문제에 곤란을 겪고 있다. 당신은 알아야 한다. 모건 로버트슨은 ‘타이탄’이 건조되고 디자인되거나 이를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다. 로버트슨은 ‘타이탄’이 사우샘프턴 부두를 떠나기 14년 전인 1898년에 『타이탄의 침몰 또는 경솔한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했다. 모건 로버트슨은 역사적인 사실을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썼기 때문에 세밀한 부분에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가 교훈을 얻었기를 진실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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